1945년 10월 미국 정부의 한 보고서는 38선을 두고 뜻밖의 권고를 적었다. 두 군대 사이에 세워진 선을 없애고 점령 행정을 하나로 묶어 국제 신탁통치의 바탕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SWNCC 79/1 보고서의 결론과 권고 부분이다. 이 문서가 보여 주는 것은 경계 폐지의 검토이지 실제 폐지가 아니다. 그래도 38선을 처음부터 영구 국경으로 확정했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보고서는 분할 점령이 이어지면 통일된 신탁통치 운영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의 출발점은 항복 접수였다. 같은 보고서의 부록에는 앞서 내려진 일반명령 제1호가 인용되어 있다. 북위 38도선 북쪽의 일본군은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게, 남쪽의 일본군은 미군 지휘관에게 항복하도록 한 조항이다. 명령문이 직접 지목한 대상은 남북의 주민이나 새 나라의 국경이 아니라 항복해야 할 일본군이었다. 이것이 1945년 38선을 읽을 때 먼저 붙잡아야 할 문장의 주어다.
명령이 갈랐던 것은 항복받을 담당 구역
일반명령 제1호를 다시 인용한 1945년 10월 보고서 부록 A 제1항에서 ‘북쪽’과 ‘남쪽’은 각각 일본군의 항복 상대를 지정하는 말로 등장한다. 북쪽은 소련군, 남쪽은 미군이다. 같은 부록은 카이로 선언의 한국 독립 약속도 따로 인용한다. 문서 안에서도 항복 접수의 실무 규정과 앞으로의 독립 문제는 같은 문장이 아니다.
명령이 만들어지던 단계의 문서도 남아 있다.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1945년 8월 11일자 SWNCC 21/5 초안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와 장비 인도, 병력 위치 보고 등 여러 항목을 나열한다. 그 안에 38도선 양쪽의 항복 상대 지정이 들어 있다. 여기서 남쪽 일본군의 항복 상대는 주한 미 원정군 지휘관으로 적혀 있다. 반면 10월 보고서가 인용한 일반명령 제1호는 미 태평양 육군 총사령관을 지목한다. 38도선이 두 문서에 모두 보이더라도 세부 문구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8월 자료가 초안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다.
그 선이 주민의 이동이나 정치적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군대가 서로 다른 구역에 들어와 행정을 맡으면서, 항복 접수를 위한 구분은 점령 행정의 구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뒤에 일어난 결과를 거꾸로 가져와 8월 명령문의 목적 자체를 ‘두 국가의 국경 확정’으로 적으면 문서에 없는 뜻을 보태게 된다.

10월 보고서는 선을 어떻게 보았나
SWNCC 79/1 보고서 부록 B 제2항은 남북의 구역 분할을 일본군 항복 접수와 무장 해제·동원 해제를 위한 긴급 조치로 설명한다. 이어 그 상태가 계속되면, 한국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 독립을 목표로 하는 통일된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어디까지나 당시 미국 측 실무 보고서의 분석이다. 한국 사회 전체의 합의나 소련 측의 입장을 대신 말해 주지는 않는다.
결론 제4~6항은 현재의 분할 점령을 가능한 한 빨리 대체하고, 두 군대 사이의 인위적인 선을 없애기 위한 조치를 모색하자고 권한다. 부록 B 제3항은 소련과의 협상 및 군사 차원의 연락도 거론한다. 여기서 신탁통치는 독립 이전에 국제적인 관리 체계를 두려는 구상이다. 선을 없애자는 말이 곧 한국인에게 즉시 통치권을 넘기자는 뜻은 아니었다. 보고서가 찾던 통합은 그 신탁통치의 준비 단계였으며, 이미 실행된 합의로 읽을 수는 없다.
통합을 준비하는 방식도 적혀 있다. 미군과 소련군 지휘관이 군사 차원에서 최대한 연락하고 조정할 것, 남쪽의 행정 구조도 소련과 합의하면 한국 전체로 확대할 수 있도록 짤 것을 제안했다. 선을 지운다는 표현 뒤에는 협상과 연락, 행정 조직의 설계라는 실무가 있었다. 지도에서 경계를 지우는 일과 두 점령 행정을 합치는 일이 같은 동작은 아니었던 셈이다.

내부 권고와 실제 역사를 나누어 읽기
미 국무·전쟁·해군 조정위원회(SWNCC)는 세 부처의 정책을 조정하던 기구다. 보고서 끝의 주석에 따르면 10월 20일 수정된 보고서는 1945년 10월 22일 위원회에서 승인되어 같은 날 국무장관에게 전달되었다. 동시에 동맹국에 전달하거나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는 권고가 붙어 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인들이 이 보고서를 읽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고 서술할 근거는 여기 없다. 공개된 정치 선언이 아니라 미국 정부 내부 정책 검토 문서였다는 성격을 기억해야 한다.
이 자료만으로는 워싱턴의 어느 개인이 지도를 펼쳐 선을 처음 제안한 과정이나, 폐지 권고가 소련과의 교섭에서 정확히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 글의 질문은 더 좁다. 8월의 항복 접수 규정과 10월의 경계 폐지 제안은 어떻게 함께 문서에 남았는가. 답은 그 사이에 이미 분할 점령이라는 현실이 생겼고, 내부 보고서조차 그 지속을 문제로 보았다는 데 있다. 이후의 정치적 분단을 이해하려면 이 권고가 왜 실현되지 않았는지도 별도의 자료로 읽어야 한다.
같은 근현대사라도 문서의 성격을 나누어 읽으면 질문이 달라진다. 1896년 신문의 실제 지면과 편집 방침은 《독립신문》 창간호 글에서, 법의 규정과 집행 과정 사이의 간격은 반민특위 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보고서의 앞쪽에는 군 지휘관의 연락과 행정 통합을 권하는 문장이 있고, 끝쪽에는 동맹국과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는 문장이 있다. 선을 없애자는 방안이 아직 누구에게 전달되지 않은 말이었는지, 나는 그 두 자리를 나란히 읽게 된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FRUS 수록 SWNCC 79/1 보고서, 1945년 10월 22일 승인, 부록 A 제1항·부록 B 제2~3항·결론 제4~6항
미국 국무부 Office of the Historian, 같은 보고서 영어 원문 및 수정·승인일 주석
미국 국무부 Office of the Historian, FRUS 1945, SWNCC 21/5 ‘Revision of General Order No. 1’, 1945년 8월 11일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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