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81, 반대 4. 1949년 9월 21일 제5회 국회 제3차 본회의에서 8월 15일의 이름을 두고 손을 든 결과다. 그 표결 때 자리에 있던 의원은 108명이었다. 법제사법위원장 백관수가 “원안에 ‘독립기념일’, 수정안에 ‘광복절’”이라고 읽자, 사회를 보던 부의장 윤치영이 이의가 있는지 물었다. 이의가 없다는 대답이 나왔는데도 거수 표결을 했다. 그날의 국회 속기록은 이 장면을 몇 줄로 남겼다.
정부가 그해 6월 1일 국회에 낸 「국경일에 관한 법률안」에서 8월 15일은 ‘독립기념일’이었다. 이름을 바꾸자고 한 것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수정안이었고, 본회의 표결을 거쳐 10월 1일 공포된 「국경일에관한법률」 법률 제53호 제2조에 ‘광복절 8월 15일’이 들어갔다. 그런데 속기록에는 왜 ‘독립’ 대신 ‘광복’이어야 하는지 설명한 발언이 남아 있지 않다. 회의장에서 더 오래 다툰 것은 ‘절’이라는 글자와 개천절의 날짜였다.
정부안이 적은 네 날짜
백관수는 수정안을 설명하기 전에 정부 원안부터 읽었다. 제1조는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국경일을 정한다는 목적 조문이었다. 제2조에는 3·1절 3월 1일, 헌법공포기념일 7월 17일, 독립기념일 8월 15일, 개천절 10월 3일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제3조는 국경일에 관공서·학교·회사·단체가 그날에 맞는 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했고, 제4조는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맡겼다. 부칙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한 줄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이 법안은 의안번호 010131, 정부 제출, 제헌국회 제3회 회기에 접수된 안으로 나온다. 그보다 앞선 단계는 국가기록원의 국경일 연혁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국가기록원은 1949년 5월 정부가 네 국경일을 담은 법률안을 마련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설명한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이 법의 ‘제정·개정이유’를 열면, 본문에는 ‘광복절’이 있는데 이유 칸에는 ‘3·1절, 헌법기념일, 독립기념일, 개천절’과 식 거행 조항이 적혀 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남은 정부안 요지와 같은 내용이다.
법제사법위원회가 지운 조문과 바꾼 이름
법제사법위원회는 이 안을 꽤 많이 깎았다. 백관수의 설명에 따르면 위원회는 조문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며 제1조 목적 조문을 통째로 지우고, ‘제2조’라는 석 자도 빼서 “국경일은 좌와 같다”만 남겼다. 식을 거행하라는 제3조는 법문에 쓸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 곧 연문(衍文)이라고 했다. 대통령령에 맡기는 제4조도 따로 정할 것이 없다며 지웠고, ‘부칙’이라는 두 글자마저 뺐다.
이름은 두 곳을 바꿨다. 헌법공포기념일은 헌법을 제정한 날이라는 뜻의 ‘제헌절’로, 독립기념일은 ‘광복절’로. 위원장의 말은 “‘독립기념일’이라는 것을 ‘광복절’로 하는 것이 좋겠다”가 전부다. 의안정보시스템의 위원회 수정 이유도 이름에 관해서는 헌법공포기념일을 제헌절로,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하려는 것이라고만 적었다. 개천절은 사정이 달랐다. 예부터 음력 10월 3일에 지켜 왔는데 정부안은 그냥 10월 3일로 적었다며, 위원회는 이 날짜를 스스로 정하지 않고 본회의로 넘겼다.

그러니 ‘광복’이라는 말을 고른 까닭은 이 자료들에서 찾을 수 없다. 오늘 국가기록원은 광복절의 취지를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며 독립정신을 이어 가는 데서 찾는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과 1948년 8월 15일의 정부 수립을 함께 담은 설명이다. 다만 이것은 지금의 기관이 정리한 취지이고, 1949년 9월 회의장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는 기록은 아니다.
‘절’이냐 ‘일’이냐, ‘날’은 어떠냐
질의가 시작되자 김봉조 의원이 먼저 나섰다. 그는 제헌절을 국경일에서 빼고 3·1절, 8월 15일, 개천절 셋만 두자고 했는데, 8월 15일을 두고는 “‘광복절’이라고 할른지 ‘독립절’이라고 할른지”라고 말했다. 수정안이 나온 뒤에도 이 날의 이름은 의원들 사이에서 아직 하나로 굳지 않았던 셈이다.
김우식 의원은 원안과 수정안이 둘 다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절(節)’ 자였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날에 ‘절’을 쓴 일은 드물고 대개 ‘일’을 썼으며, 이태왕 시절 임금의 탄신을 만수성절이라 부른 것도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을 본뜬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제헌일·광복일·개천일·3·1기념일처럼 모두 ‘일’로 고치자고 했다. 이태왕(李太王)은 국권을 잃은 뒤 고종에게 붙은 칭호다. 고종이 1897년에 나라 이름을 정하던 문답은 국호 ‘대한’이 정해진 날의 기록에서 따로 읽었다.
조국현 의원이 곧 받아쳤다. ‘절’은 한문이 시작된 중국에서 먼저 쓴 글자라며, 당 태종이 자기 생일을 만수절이라 불렀다는 예를 들었다. 일본이 먼저 썼을 뿐 그것을 따라 한 것은 없다는 주장이었고, 그는 수정안에 찬성했다.
축조 심의에 들어가서는 박상영 의원이 ‘국경일’ 대신 ‘국경날’로 하자고 했다. 3·1절은 3·1기념날, 헌법공포기념일은 헌법공포기념날처럼 “‘날’자를 넣어 가지고 따뜻하게 우리나라 말로서” 부르자는 뜻이었다. 속기록에는 그 말끝에 “박상영이라는 이름부터 고쳐요”라는 외침과 웃음소리가 적혀 있다. 이 제안을 표결에 부친 기록은 없다.
광복절은 몇 줄, 개천절은 몇 면
제1독회는 길지 않았다. 정준 의원이 질의도 별로 없이 대체토론이 이어졌으니 바로 제2독회로 넘어가자고 했고, 재석 108명 가운데 89명이 찬성했다. 이어진 축조 표결은 조문마다 따로 손을 드는 방식이었다. 제1조 삭제는 처음에 찬성 20, 반대 38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가 다시 물어 62 대 40으로 가결됐다. 제헌절도 수정안대로 바뀌었다.
8월 15일 차례는 짧았다. 백관수가 원안과 수정안의 이름을 두 번 되풀이해 읽었고, 81 대 4의 거수 끝에 속기록은 “광복절로 되었읍니다”라고 적었다.

시간을 잡아먹은 것은 개천절이었다. 음력으로 환산해 날을 정하자는 쪽과 양력 10월 3일로 두자는 쪽이 맞섰다. 단군 이래 지켜 온 날을 함부로 옮길 수 없다는 주장, 수천 년 전 책력을 따질 길이 없다는 반론, 10월은 날씨가 좋고 오곡이 풍성한 때라는 말까지 나왔다. 음력 환산안은 재석 116명 중 찬성 43, 반대 29로 미결이 됐고, 양력 원안이 69 대 28로 가결됐다. 속기록에서 광복절 표결이 몇 줄이라면, 개천절 토론은 몇 면에 걸친다.
나머지 조문은 결과가 들쭉날쭉했다. 식 거행 조항은 재석 121명 중 82 대 1로 삭제됐지만, 대통령령 조항은 삭제안이 두 번, 원안이 한 번 미결로 끝난 뒤 원안이 70 대 6으로 살아남았다. 권태희 의원은 경사스러운 날을 정하는 법이 “조건 조건마다 과반수가 될락 말락한 정도로” 통과됐다며 유감을 표했고, 이런 법안이 왜 문교사회위원회가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로 갔느냐고 따졌다. 본회의는 제3독회를 생략하고 자구 수정을 법제사법위원회에 맡기기로 72 대 0으로 의결했다.
이날 회의 첫머리 보고사항에는 이인 의원 외 48명이 낸 반민족행위처벌법 개정안과 특별조사기관 조직법 폐기안도 올라와 있었다. 국경일의 이름을 정하던 같은 회의장에서 반민특위의 법적 근거가 줄어들던 시간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속기록과 공포문이 어긋나는 한 줄
10월 1일 공포된 법률 제53호는 이날의 결정과 대부분 맞는다. 식 거행 조항은 없고, 대통령령 조항은 제3조로 남았으며, 제2조에는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이 날짜와 함께 적혀 있다. 그런데 제1조에는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경일을 정한다”는 목적 조문이 그대로 있다. 속기록에서는 62 대 40으로 삭제가 가결된 조문이다.
의안정보시스템이 적은 본회의 수정 요지도 대통령령 조항과 ‘부칙’이라는 글자를 원안대로 했다는 내용뿐이다. 제3독회를 생략하고 자구 정리를 위원회에 맡긴 뒤 무엇이 오갔는지는 이 속기록에 없다. ‘광복’이라는 두 글자를 고른 까닭과 함께, 이 한 줄도 다른 기록을 찾아야 풀린다.
참고 자료
국회 회의록, 「제5회 국회임시회의속기록 제3호」(1949년 9월 2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안 제1·2독회(4~14면) 및 회의 정보. 이 글의 발언과 표결 숫자는 이 속기록을 따랐고, 인용문은 속기록의 옛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010131] 국경일에관한법률안(정부)의 제안이유·위원회 수정사항·본회의 수정사항.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경일에관한법률」 법률 제53호(1949년 10월 1일) 본문과 제정·개정이유. 국가기록원, 「국경일과 법정기념일」 개요와 「광복절」 안내.
1945년 8월 이후 한반도를 가른 선이 미국 정부 문서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38선 폐지를 검토한 보고서 이야기에 따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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