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년 음력 10월, 대마도에서 온 사자에게 예조 판서 허조가 답장을 썼다. 몇 달 전 군사를 보냈던 조정은 이번에는 편지로 복종과 이주를 제안했다. 《세종실록》 세종 1년 10월 18일 기사에 남은 답서는 섬 사람들이 복종하고 이주하기를 원한다면 작위와 농사지을 준비를 제공하겠다는 조건부 제안이다. 원정이 끝나자 곧바로 대마도를 차지했다는 완료 보고가 아니다.
토벌을 알린 6월의 문장과 이 답서를 나란히 두면 목소리가 달라진다. 하나는 군사를 보내는 이유를 신하와 백성에게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상대의 사자에게 선택할 길을 제시한다. 두 문서가 모두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 쓰였다는 점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6월의 교유는 누구를 향했나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6월 9일 기사에서 상왕 태종은 ‘중외’에 교유한다. 농사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일을 먼저 변명하고, 비인포의 습격과 해안의 피해를 들어 토벌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먼저 보인 것은 승전의 선언이 아니라, 출병을 납득시켜야 했던 조정의 말이다. 태종은 옛 중국 왕조의 전쟁 사례까지 불러내 농번기의 출병을 설명했다. 실제 동원 부담의 크기는 이 교유에 집계돼 있지 않지만, 문서 첫머리에 농사철이 등장하는 이유는 드러난다.
교유에는 대마도가 ‘본래 우리 나라 땅’이라는 주장도 들어 있다. 이는 1419년 조정이 군사를 보내며 제시한 역사적·정치적 주장으로 읽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을 현재의 영토 관계에 관한 판정이나 원정 뒤 통치가 성립했다는 증거로 바꿀 수는 없다. 공격을 정당화하는 문서가 말하는 바와 그 후에 실제로 벌어진 일은 서로 다른 층위다.
같은 기사는 조정이 이전에는 굶주린 사람을 구제하고 통상도 허용했다고 말한다. 상왕은 이전의 구제와 교역 허용을 이번 출병의 명분과 연결했다. 도움을 주었는데도 습격이 이어졌다는 논리다. 이 문서가 전하는 관계는 교류가 없었던 두 지역의 첫 충돌과는 다르다.

주원방포에서 출발한 배
며칠 뒤 기록은 의외로 짧다. 《세종실록》 4권, 6월 19일 기사는 이종무가 거제 남쪽 주원방포에서 배를 출발시켜 ‘다시’ 대마도로 향했다고 적는다. 사시, 곧 오전의 시각과 출발한 포구까지 적혀 있지만, 그 뒤의 협상 내용은 이 한 줄에 없다. 이 글은 여기서 항해를 잠시 멈추고, 가을의 서신으로 넘어간다.

10월의 답서는 무엇을 약속했나
《세종실록》 5권, 10월 18일 기사는 대마도주 도도웅와가 보낸 사람 도이단도로가 궁궐에서 사명을 마쳤다고 적는다. 이어 예조 판서 허조의 회신을 싣는다. 상대가 요청한 섬 사람의 송환과 인신, 곧 권한을 나타내는 도장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언급한다. 이어 병조 판서 조말생이 받은 선지의 내용을 허조가 답서로 전달한다. 허조가 혼자 정한 초청장이 아니라 조정의 뜻을 되돌려 보내는 서신이었다.
답서는 도도웅와가 섬 사람들을 타일러 온 섬 사람들이 조선에 ‘항복해 온다면’ 작위와 인신, 녹과 집·땅을 주겠다고 말한다. 대관인에게는 서열에 따른 작위와 녹을, 나머지 사람에게는 원하는 바에 따라 비옥한 땅과 농사지을 준비를 제공한다는 제안이다. 섬의 땅이 척박해 생활이 어렵다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편지는 생활의 곤란을 왜구의 행동과 연결하며 이주를 권한다. 조정이 상대를 설득하려고 펼친 설명이지, 모든 섬 주민의 생활을 조사한 결과로 받아들일 대목은 아니다.
여기서 동사는 중요하다. ‘주었다’가 아니라 ‘온다면 주겠다’이다. 12월에는 먼저 일을 맡을 사람을 보내 농량과 농기구, 씨앗을 준비할 수 있게 하라는 기한도 붙인다. 이 답서가 있었다는 사실로 모든 섬 주민이 옮겨 왔다거나 대마도에 조선의 행정이 곧바로 설치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 뒤의 이행 여부는 이 기사의 범위 밖이다.

송환 요청에도 조건이 붙는다. 이미 조선의 여러 도에 나누어 둔 왜인에게 의복과 식량을 주어 살게 하고, 상대가 항복해 오는 날 모이게 하겠다는 답이다. 빨리 만나려는 부자와 형제는 먼저 오는 관리자를 따라오도록 했다. 상대가 사람을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했는데, 조정은 그 요청을 이주와 복종의 제안 안에서 다룬 것이다.
국가의 말과 실제 시행 사이를 구별하며 읽는 일은 신문고의 접수 조건을 다룬 글에서도 필요했다. 전쟁의 이유를 당대 문서에서 찾을 때는 팔만대장경 조성 기도문 이야기와도 질문이 닿는다. 편지는 끝에서 섬의 사정을 알고 의리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라고 권한다. 내가 오래 읽게 되는 것은 위협의 큰 문장보다 그 앞의 씨앗과 농기구다. 조정이 내민 조건부 초청에는,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 다음 농사철을 어떻게 맞을지까지 적혀 있었다.
참고 자료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6월 9일 5/5 기사, 상왕의 대마도 출병 교유
《세종실록》 4권, 6월 19일 7/7 기사, 이종무의 주원방포 출항
《세종실록》 5권, 10월 18일 3/4 기사, 허조의 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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