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맥아더 포고 제1호, 해방 뒤에도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명령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의 첫 문장은 “본관 휘하의 전첩군은 본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함”이다. 미군정청 관보에 실린 국한문본을 끝까지 읽으면 날짜는 1945년 9월 7일, 장소는 ‘於橫濱’, 곧 일본 요코하마다. 미군 선단이 인천항에 들어온 것은 이튿날인 9월 8일이었다. 오늘 점령한다고 적은 문서가 상륙 하루 전에 바다 건너에서 서명된 것이다.

이 포고문이 주민에게 먼저 요구한 것은 하던 일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1조는 38도 이남의 ‘모든 행정권’을 당분간 맥아더의 권한 아래 두었고, 제2조는 관공리와 공공사업 종사자에게 따로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직무를 계속하며 기록과 재산을 지키라고 했다. 제4조는 주민 모두에게 일상의 업무에 종사하라고 했다. 이 명령이 누구를 얼마 동안 자리에 붙잡아 두었는지는 포고문에 적혀 있지 않다. 그 뒤 일주일 사이에 나온 신문 기사와 미국 외교 문서가 첫 장면의 일부를 보여 줄 뿐이다.

9월 7일에 서명한 문서가 ‘본일’이라고 쓴 사정

날짜가 어긋난 까닭을 두고는 짐작 하나가 남아 있다. 1945년 9월 11일 자 《매일신보》는 포고 제1·2·3호 전문을 한꺼번에 실었다. 이 기사를 옮긴 《자료대한민국사》 1권 항목에는 “본 포고는 9월 9일 항복문서 조인식 후에 공포되었으나 포고 일자가 9월 7일로 된 것은 미군의 조선 진주를 9월 7일로 예정한 때문인 듯하다”는 주가 붙어 있다. 문장이 ‘듯하다’로 끝나니 확인된 사실보다는 추정으로 읽어야 한다.

발표일을 잡는 기준도 자료마다 다르다. 미국 국무부 역사실이 공개한 《미국 외교관계 문서》(FRUS) 1945년 6권은 포고 제1호를 9월 7일 요코하마 문서로 싣고, 주석에서 제2호(범죄와 법규 위반)와 제3호(통화)도 같은 날 맥아더가 발포했다고 적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헌정사 자료 DB 해설은 하지 중장이 상륙 전후에 제1호와 제2호를 여러 차례 공중에서 뿌렸다고 설명하고, 《사료로 본 한국사》 해설은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 9월 9일에 발표된 문서로 소개한다. 서명한 날, 하늘에서 뿌린 날, 신문에 전문이 실린 날이 제각각이다. 어느 날을 발표일로 부를지는 기준을 함께 밝혀 적어야 한다.

9월 9일은 오후 4시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그날 《매일신보》 호외는 식이 시작한 지 25분 만에 끝났다고 전한다. 포고문이 거듭 쓰는 ‘북위 38도 이남’은 본래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구역을 가른 선이었고, 그 선을 다룬 미국 문서는 38선 폐지 검토를 읽은 이전 글에서 따로 살폈다.

기와집 골목 위로 흩날리는 빈 종이를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한지 수채화

제2조가 자리에 붙잡아 둔 사람과 서류

제2조는 대상을 길게 늘어놓는다. FRUS 영문을 풀면 정부·공공기관의 관리와 명예직, 고용인이 먼저 나오고, 공공복지와 공중위생을 포함한 모든 공익사업과 공공 업무의 직원이 보수를 받든 받지 않든 뒤따른다. 마지막은 그 밖에 필수 업무(essential services)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다. 관청 책상 앞에 앉은 사람보다 훨씬 넓은 범위다.

명령은 두 가지다. 따로 명령이 있을 때까지 평소의 기능과 의무를 계속할 것, 그리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하고 지킬 것(preserve and safeguard all records and property). 관보 국한문본은 뒤쪽을 “모든 記錄과 財産의 保管에 任할 事”로 옮겼다. 일을 멈추지 말라는 말과 서류를 잃지 말라는 말이 한 조항에 함께 들어 있다.

기한을 정하는 말은 영문 ‘Until further orders’, 국한문본의 ‘別命’, 곧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라는 말 하나다. 그 별명을 누가 내리는지는 제6조가 말한다. 앞으로의 포고·법령·규약·고시·지시·조례는 맥아더 또는 그의 권한 아래에서 발포하고 주민이 이행할 사항을 밝힌다는 조항이다. 제4조는 같은 틀을 주민 전체로 넓혔다. 주민의 소유권은 존중하며, 별명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업무에 종사하라는 것이다. 영문으로는 “You will pursue your normal occupations”다.

1940년대 사무실에서 서류 뭉치를 끈으로 묶는 직원의 뒷모습을 상상해 그린 한지 수채화

일주일 앞선 항복문서에 이미 있던 ‘현직에 머물라’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지시는 일주일 앞선 문서에 이미 들어 있었다. 1945년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함에서 일본 대표들이 서명한 항복문서는 모든 문무 관리에게 연합국최고사령관의 포고·명령·지시를 따르게 하고, 특별히 해임되지 않는 한 현직에 머물러 비전투 임무를 계속하도록 지시한다고 적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공개한 전사본의 해당 구절은 “remain at their posts and to continue to perform their non-combatant duties unless specifically relieved”다.

9월 9일 서울 조인식에서 공개된 항복문서 국문도 이 대목을 옮겨 “특히 그 직을 면치 않는 한 모두 그 현직에 머물러 비전투사무의 수행함을 명함”이라고 적었다.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이 문서 끝에서 총독의 직권으로 그 의무를 지고 재조선미군사령관의 지령을 빠짐없이 수행하겠다고 서명했다. 영어 본문과 번역문의 뜻이 맞서거나 불명료하면 영어를 따른다는 조항도 같은 문서에 있다. 포고 제1호의 제2조와 제5조에 해당하는 문장이 항복문서 쪽에 먼저 있었던 셈이다.

영문과 국한문이 다르게 옮긴 네 대목

제5조는 군정 기간에 영어를 모든 목적에 쓰는 공용어로 삼고, 영어와 조선어 또는 일본어 사이에 해석이나 정의가 분명하지 않거나 다르면 영어를 기본으로 한다고 정했다. 실제로 FRUS 영문과 관보 국한문본을 나란히 놓으면 결이 다른 대목이 눈에 띈다.

대목FRUS 영문관보 국한문본
머리말the Korean people are assured朝鮮人은 認識할 줄로 確信하고
제1조All powers of Government모든 行政權
제2조essential services諸般 重要한 職業
제3조will be punished severely容恕업시 嚴罰에 處함

머리말에서 영문은 조선 사람들에게 ‘확언한다’는 꼴인데, 국한문본은 조선인이 ‘인식할 줄로 확신하고’라고 해서 포고하는 쪽의 기대를 말하는 문장이 됐다. 제3조의 ‘용서 없이’는 영문에 없는 말이다. 범위가 가장 크게 달라지는 곳은 제1조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로 본 한국사》는 이 대목을 ‘통치의 전 권한’으로, 같은 기관이 제공하는 FRUS 국역은 ‘모든 행정권’으로 옮겼다. 제5조대로라면 해석이 갈릴 때 기준은 영문이다. 그래도 1945년 9월 신문에서 이 포고를 읽은 사람이 본 단어는 ‘행정권’이었다.

서명 표기에도 그 시절 번역의 흔적이 남았다. 관보 국한문본 끝의 서명은 ‘美國陸軍大將 떠글러쓰·맥아-’다.

하지가 기자들 앞에서 다시 읽은 제2조

9월 9일 조인식에서 하지가 낭독한 성명에는 항복 조건을 이행하는 데 “시초에 있어서는 현 행정기구를 사용할 필요가 있노라”는 문장이 있다. 이틀 뒤인 9월 11일 기자회견에서 하지는 포고 제1·2·3호를 아직 읽지 못했다면 잘 읽어 달라고 당부하고, 제2조를 거의 그대로 읊은 뒤 “특히 이 점에 유의하여” 달라고 했다. 현존 기관은 지금 있는 사람이 운영해 간다는 뜻이 아니라 새 기계가 놓일 때까지 기계적인 역할만 맡기는 것이라는 비유, 농민은 농사에 상인은 상업에 전념하라는 당부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기자들의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일본인을 당분간이라도 관리로 그대로 쓰는 이유였다. 《매일신보》 기사에 실린 하지의 답은 “졸지에 이용할 만한 기관이 없어 부득이 행정기관과 그곳에 있는 일본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일본인 재산을 묻는 대목에서는 구체안이 설 때까지 파괴되거나 소모될 염려가 있는 것은 조선 사람이 관리하고 보존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제2조의 ‘재산 보존’이 관리들만의 몫으로 남지 않은 셈이다.

워싱턴의 반응도 문서로 남았다. 9월 10일 국무·전쟁·해군 3부조정위원회(SWNCC) 의장 대리의 메모는 남조선의 미군 사령관이 일본인 총독과 관리들을 당분간 유임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이미 한국에서 미국의 입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적었다. 함께 올린 맥아더 앞 전문 초안은 정치적 이유로 아베 총독과 총독부 각 국장, 도지사, 도 경찰부장을 즉시 해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고, 다른 일본인과 부역한 조선인 행정관도 서둘러 물러나게 하라고 했다. 이 초안은 11일 SWNCC 승인과 14일 합동참모본부 수정을 거쳤다.

서울의 발표는 그 수정보다 이틀 빨랐다. 1945년 9월 13일 자 《매일신보》는 하지가 12일 자로 아베 총독을 정식 해임하고 아놀드 소장을 군정장관에 임명했으며, 니시히로(西廣) 경무국장도 파면했다고 전한다. 조인식에서 서명한 총독이 사흘 뒤 물러났다. 국무장관 대리 애치슨이 9월 14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올린 메모는 이 흐름을 미군 사령관이 처음에는 일본인 관리를 당분간 유임한다고 했다가 뒤이어 가능한 한 빨리 해임한다고 발표했다고 정리했다. 메모에 붙은 대통령 성명 초안은 당분간 남는 일본인은 기술적 자격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한국 사람과 점령군을 위해 쓰인다고 적었고, FRUS 주석은 이 성명이 9월 18일 백악관에서 발표됐다고 밝힌다.

해임 뒤에도 일은 이어져야 했다.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9월 15일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는 일본인 관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여론으로 보면 바람직하지만 한동안은 어렵다며 “They can be relieved in name but must be made to continue work”라고 썼다. 이름으로는 해임할 수 있어도 일은 계속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이 분석이 하지가 맥아더에게 보낸 것과 거의 같다고 밝힌다.

기와집 골목과 붉은 벽돌 건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상상해 그린 한지 수채화

포고문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

포고 제1호에 나오는 사람 이름은 서명한 맥아더 하나다. 제2조가 붙잡아 둔 ‘종래의 직무’가 어느 부서 누구의 자리였는지, 일본인 관리와 조선인 관리가 각각 언제까지 남았는지는 여기서 읽은 포고문과 기사, 외교 문서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SWNCC 초안이 말한 부역 조선인 행정관의 해임이 얼마나 집행됐는지도 마찬가지다. 1948년 9월 22일 공포된 반민족행위처벌법과 반민특위가 그 뒤의 이야기이고, 그 법이 좁아진 과정은 반민특위의 끝을 다룬 글에 따로 적었다.

베닝호프의 문장대로라면 서류 위에서 해임된 사람과 실제로 손을 뗀 사람은 따로 세어야 한다. 그 둘을 나눠 적은 명단은 이번에 읽은 문서들 어디에도 없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헌정사 자료 DB, 「조선인민에게 고함 (태평양미육군총사령부 포고 1호)」(KOREA Official Gazette Miscellaneous Vol. Ⅲ 국한문본과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로 본 한국사》, 「남한 점령 태평양 주둔 미군사령관 포고 제1호」(국문·영문·해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미군정청관보, 「Proclamation No. 1 : To the people of Korea」(발행일 1945.09.07). Office of the Historian,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45, Vol. VI, Document 776, 777, 780, 78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현대 사료 DB 「맥아더 미 육군원수의 포고령 제1호」. 《자료대한민국사》 1권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2·3호공포」(매일신보 1945.9.11), 「在조선일본군 및 총독의 항복문서조인식 거행」(매일신보 호외 1945.9.9), 「하지, 조선동포에게 고하는 성명을 발표」(같은 호외), 「하지, 기자회견에서 미군 施政方針을 발표」(매일신보 1945.9.12), 「조선총독 阿部信行해임, 군정장관에 아놀드임명」(매일신보 1945.9.13). National Archives, Surrender of Japan (1945) 전사본. 2026년 10월 26일 확인. 이 글의 그림은 당시 장면이나 실제 건물을 옮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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