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7일 나온 《독립신문》 창간호에는 조금 뜻밖의 안내가 있다.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 달라고 권하면서도, 한문으로 쓴 편지는 다루지 않겠다고 했다. 첫 면의 광고에는 “한문으로 한 편지는 당초에 상관 아니함”이라는 문장이 선명하다. 신문이 누구의 목소리를 싣겠다고 했는지 알려면, 이 짧은 문장을 같은 호의 창간 논설과 나란히 놓고 읽을 필요가 있다.
오늘의 눈에는 한문 편지를 거절한다는 말이 새로운 배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창간호 첫 논설은 왜 국문으로 쓰는지를 별도로 설명한다. 남녀와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읽게 하려 한다는 것이 편집진의 말이다. 한문으로 된 글이 공적인 말의 중심에 있던 시절, 신문 안에서는 다른 문턱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다만 선언이 곧 모든 사람이 읽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창간 논설이 말한 독자의 범위
논설의 첫 대목은 이 신문이 조선 안의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자기 뜻을 먼저 알린다고 시작한다. 이어 서울 백성만이 아니라 전국의 사람을 위해 말하겠다고 밝힌다.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형편을 정부에 전하겠다는 역할도 적었다. 신문을 한쪽으로만 흐르는 고시판이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알리는 통로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창간 때 내건 목표다. 실제로 어떤 목소리가 얼마나 지면에 실렸는지는 다른 호를 더 읽어야 확인할 수 있다.
국문 사용의 이유를 밝히는 문장도 구체적이다. 논설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언문으로 쓰고, 읽기 쉽도록 구절을 떼어 쓴다고 설명한다. 문자 선택뿐 아니라 문장을 어디에서 끊어 읽을지까지 독자의 이해와 연결했다. 어려운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고 독자에게 따라오라고 하는 방식과는 다른 편집 방침이다. 이 대목은 ‘한글로만 쓰면 저절로 문해가 넓어진다’는 통계가 아니라, 그 신문을 만들던 사람들이 독자의 범위를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같은 논설은 한쪽에 영문을 조금 적는다고도 말한다. 외국인이 조선 사정을 한쪽 말만 듣고 오해하지 않도록 실제 사정을 알리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독립신문》을 ‘한글 독자만을 위한 신문’으로 줄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국문 지면은 조선 안의 폭넓은 독자를, 영문 지면은 조선의 일을 알고자 하는 외국인 독자를 향했다. 언어를 달리 쓴 목적을 논설이 직접 구분해 적은 것이다.
광고는 편지와 구독을 함께 부탁했다
창간호 광고로 돌아가면 신문을 읽는 일뿐 아니라 참여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세상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물어볼 일을 짤막한 편지로 보내면, 대답할 만한 내용에는 답하고 실을 만한 내용은 신문에 내겠다고 했다. 여기서 한문 편지를 다루지 않겠다는 안내가 이어진다. 논설의 국문 편집 원칙을 독자의 투고 방식에도 적용한 셈이다. 그러나 편지를 보내기만 하면 반드시 게재한다는 약속은 아니다. 광고 문장 자체가 편집진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
광고는 가격도 세세하게 알렸다. 한 장에 동전 한 푼, 한 달에 열두 전, 일 년에 한 원 삼십 전이라는 식이다. 정동의 신문사에 선불로 이름과 주소를 남기는 구독 방법도 제시했다. 제물포, 원산, 부산, 평양 등 여러 지역의 분국을 적고, 길거리에서 신문을 가져다 팔려는 사람에게 도매에 해당하는 셈법도 안내했다. ‘전국의 인민을 위한다’는 창간 논설의 말이 실제로는 인쇄, 판매, 배달이라는 일과 붙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신문을 누구에게나 쉽게 건넬 수 있었을지는 광고만으로 알 수 없다. 값을 낼 돈, 읽을 시간과 능력, 분국까지 닿는 거리도 사람마다 달랐을 것이다. 광고에 분국 목록이 있다는 사실은 판매 계획의 근거이지만, 그 지역 주민 모두가 구독했다는 근거는 아니다. 이 차이를 남겨 두어야 창간호의 포부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포부가 어떤 실무로 이어지려 했는지 읽을 수 있다.
거절의 한 문장이 남기는 질문
한문 편지를 다루지 않겠다는 말은 창간호 안에서 혼자 떨어진 문장이 아니다. 국문으로 기사를 쓰고, 구절을 나누고, 독자 편지의 언어를 정하는 편집 선택과 한 묶음이다. 신문이 읽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겠다고 말하면서도 투고의 형식에는 선을 그었다는 긴장도 있다. 원문은 그 선을 분명히 보여 주지만, 한문 편지를 보내려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까지는 들려주지 않는다.
국가기록원은 4월 7일을 한국 첫 순국문 신문 창간일로 소개한다. 그 날짜를 기념할 때 나는 광고 한 귀퉁이의 독자 편지 안내도 함께 기억하고 싶다. 한글로 쓴다는 선언은 신문 지면에서 끝나지 않았다. 누구의 편지를 받고, 어느 곳에 팔고, 어떻게 다시 답하겠는지라는 작은 운영 문장으로 내려왔다. 그 문장들을 통해 1896년 신문이 스스로 상상한 독자의 얼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문자의 선택이 실제 역사 기록에서 어떤 뜻을 가졌는지 더 읽으려면 훈민정음 창제와 책 완성의 차이를, 제도에 적힌 약속과 실제 절차 사이를 보려면 신문고의 접수 조건을 함께 읽어 볼 수 있다.
읽은 원문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 《독립신문》 1896년 4월 7일 창간호 1면2단 논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 같은 호 1면1단 광고
국가기록원, 독립신문 창간 기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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