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1443년에 만들고 1446년에 완성했을까

《세종실록》의 훈민정음 창제 기사는 1443년 12월의 맨 끝에 놓였다. 그런데 날짜를 자세히 보면 ‘12월 30일에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다. 세종 25년 12월 30일 제2기사의 첫머리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이다. 훈민정음은 1443년에 창제됐지만, 이 기록만으로 그달의 어느 하루를 창제일로 찍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1446년은 무엇을 가리킬까. 세종 28년 9월 29일 제4기사는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고 적고 세종의 글과 정인지의 서문을 이어 싣는다. 글자를 만든 일과 글자의 쓰임을 설명한 책을 완성한 일을 구별하면, 두 연도는 서로 틀린 답이 아니다. 다만 이 기사도 ‘이달에’라고 했지 책이 정확히 9월 29일에 끝났다고 못 박지는 않았다.

‘28자’ 뒤에 적힌 사용법

1443년 기사는 새 글자를 세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초성·중성·종성을 나누어 합해야 글자가 된다고 적고, 우리말도 적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름도 이미 ‘훈민정음’이라고 밝힌다. 그러므로 1446년에야 비로소 글자의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은 이 기사와 맞지 않는다.

빈 한지와 붓, 벼루를 그린 한지 수채화 삽화

반면 그 짧은 창제 기사에는 글자 하나하나의 소리값을 따라 익히는 설명이 없다. 두 기록의 분량과 구성을 나란히 놓고 읽어 보니 차이가 또렷했다. 1446년 완성 기사에는 세종이 글자별 소리와 결합 방법을 풀어 쓴 대목이 길게 실리고, 그 뒤에 정인지가 해석과 범례를 짓는 일을 서문에서 설명한다. 책의 설명을 더한 것이지, 없던 문자 28자를 그때 처음 만들어 냈다는 뜻은 아니다.

정인지의 서문도 ‘계해년 겨울’, 곧 1443년에 세종이 28자를 처음 만들고 간략한 예의를 보였다고 회고한다. 이어 세종이 자세한 해석을 더하라고 명해 정인지와 여러 사람이 해석과 범례를 지었다고 적는다. 서문은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전하지만, 창제 과정의 매일 누가 어느 획을 그었는지까지 전하는 작업일지는 아니다. 창제와 해설의 경계를 읽는 데 필요한 만큼만 이 말을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하다.

두 연도 사이, 반대 상소가 올라왔다

그 사이에 글자가 조용히 보관되어 있던 것도 아니다. 《세종실록》 세종 26년(1444) 2월 20일 제1기사에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을 반대하며 올린 상소가 실려 있다. 한자와 이두로도 일을 처리해 왔다는 주장, 새 문자를 쓰면 기존 학문이 약해질 것이라는 걱정이 상소에 함께 들어 있다. 이 글을 ‘백성을 싫어해서 반대한 사람들’이라는 한 문장으로 줄이면, 그들이 내세운 논거를 읽을 수 없게 된다.

종이가 놓인 조선 시대 서재를 상상해 그린 수채화 삽화

내가 여기서 오래 머문 대목은 재판 기록에 관한 반론이다. 상소는 언문으로 진술을 직접 적더라도 억울한 판결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옥리의 처리가 중요하다고 맞섰다. 같은 기사에서 세종은 이두의 본뜻도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느냐고 되묻는다. 두 쪽이 모두 ‘실제로 써서 무엇이 달라지느냐’를 따진 셈이다. 세종의 말이 이후 모든 재판에서 실현됐다고도, 반대자들의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도 이 기사 하나로 결론 내릴 수 없다.

상소에 ‘27자의 언문’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같은 시기의 창제 기사와 1446년 기사는 모두 28자를 적는다. 상소의 수를 가져와 창제 글자 수가 달라졌다고 단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문서에 숫자가 다르게 적혀 있다는 사실까지만 말해야 한다. 왜 하나가 빠졌는지는 이 세 기사만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책이 완성되면 모두 읽게 되었을까

1446년 기사에서 세종의 글은 사람들이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려는 뜻을 밝힌다. 정인지의 서문은 글자를 배우는 데 드는 시간이 짧다고 말한다. 둘 다 당대의 목표와 평가를 알려 주는 문장이다. 그것만으로 그해 모든 백성이 실제로 글자를 읽고 쓰게 되었다는 통계가 되지는 않는다. 누가 배웠고 어디에서 사용했는지는 사용 사례를 더 찾아야 답할 수 있다.

한지를 접고 묶는 책 제작 도구를 그린 수채화 삽화

이 구별은 훈민정음을 기리는 마음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글자를 만들었다는 소식, 새 글자를 둘러싼 논쟁, 사용법을 설명한 책의 완성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확인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실록의 날짜를 한 줄로 압축할 때 사라지기 쉬운 것은 그 사이의 말들이다.

글자를 만든 뒤 책으로 설명한다는 일이 낯설지 않다면, 전쟁 중 경전을 다시 새기게 된 이유를 적은 기도문이나 소현세자 죽음에 관한 서로 다른 실록 기사도 함께 읽을 만하다. 다시 1443년 기사로 돌아오면, 내게는 맨 앞의 ‘이달에’라는 말이 남는다. 날짜가 붙은 기록에서도 모르는 하루는 모르는 하루로 두어야 한다.

참고 자료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제2기사, 훈민정음 창제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1444) 2월 20일 제1기사, 최만리 등의 상소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1446) 9월 29일 제4기사, 《훈민정음》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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